기다란 테이블을 두는 가정이 늘었다. 방에 틀어박힌 아이, 소파에 누워 있던 아빠, 주방 붙박이 엄마를 테이블이 불러 모은다. 아이는 그림 그리고, 아빠는 노트북 열고…. 서로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눈다. /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스타일리스트 성금실

"펜으로 보면 그것은 땅이다." 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퐁주는 '이것'을 이렇게 일렀다. 영국 여류 소설가 샬럿 브론테는 부엌 한구석 '이것'에서 바느질과 글쓰기를 오가며 소설 '제인 에어'를 완성했다. 어떤 이에겐 밥상이고, 어떤 이에겐 창작의 텃밭이 되는 '이것'. 네 다리 위 상판이 견고하게 놓인 가구, 테이블이다.

이 평범한 가구가 요즘 우리 삶 한가운데 들어와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집에선 '거실 터줏대감' 소파를 제쳤다. '엉덩이 받침용'이란 제 기능보다 'TV 시청용 수면 침대'에 가까운 푹신한 소파를 구석으로 밀어냈다. 덕분에 휴일이면 소파, TV와 '3단 합체 로봇'이나 다름없던 아빠가 분리·변신했다. 몸 일으켜 세워 테이블에 둘러앉아 TV 아닌 '가족'과 마주한다.

공부방도 바꾼다. 주입식 교육 맞춤형 디자인이라도 되듯 오로지 책에만 파묻히는 분위기를 강요하는 책상을 치우고 테이블 들여놓는 집이 늘었다. 면벽수행(面壁修行)하듯 몸 비틀며 공부하던 아이가 아빠·엄마와 마주 앉았다. 식탁 겸 작업대로 쓰이는 테이블은 '싱크대 붙박이' 엄마에게도 빙 둘러앉아 커피 한잔 마실 여유를 주는 쉼터다.

테이블이 맹활약하는 곳은 집만이 아니다. 회사 사무실 중앙에 대형 테이블이 속속 등장해, 가림막으로 경지 정리하듯 네모반듯하게 잘라둔 사무실 배치를 뒤집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어도 업무 달라 부딪힐 일 없던 동료와 테이블에서 만난다. 예기치 못한 아이디어도 얻는다. '계획되지 않은 협업(unplanned collaborations)'이 우연히 일어나도록 사무실 곳곳에 커다란 테이블부터 두게 했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옳았다.

작은 테이블 여러 개 두는 대신 커다란 공유 테이블(communal table)을 배치한 '원 테이블(one table)' 레스토랑도 늘고 있다. 낯선 이와 나란히 앉아 옷깃 스치며 이야기한다. 차가운 디지털의 시대, 테이블이 멀어져가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테이블은 대화이며, 소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