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추신수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우완을 상대했을 때는 OPS가 메이저리그에서 네 번째로 좋았지만, 좌완 앞에서는 5번째로 나빴다.

2013 우완 상대 OPS 'Top 5'
1. 데이비스 : 1.142 (.316 .415 .728)
2. 오티스　 : 1.092 (.339 .440 .652)
3. 카브레라 : 1.035 (.341 .426 .609)
4. 추신수　 : 1.011 (.317 .457 .554)
5. 트라웃　 : 1.000 (.327 .428 .572)

2013 좌완 상대 OPS 'Bottom 5'
1. 파라　　 : 0.501 (.198 .276 .226)
2. 모어노　 : 0.525 (.207 .247 .278)
3. 해밀턴　 : 0.596 (.201 .233 .363)
4. 아빌레스 : 0.605 (.232 .269 .335)
5. 추신수　 : 0.612 (.215 .347 .265)

우완과 좌완을 상대로 한 OPS의 차이는 무려 .399. 우완을 상대로 나섰을 때 추신수는 크리스 데이비스(1.004)급 타자였지만, 좌완을 만나면 미네소타의 수비형 유격수 페드로 플로리몬(.611)으로 변했다. 3할9푼9리의 차이는 통산 기록(.252)과 지난해 기록(.321)을 넘어서는 것으로,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보다 더 큰 OPS 차이를 보인 타자는 없었다. 참고로 2013년 메이저리그 좌타자들의 OPS 차이는 평균 .096였다(우완 상대 .741 좌완 상대 .645).

추신수의 좌우완 상대 OPS(통산/2012/2013 순)
[우] .309 .411 .521 0.932 [좌] .243 .340 .341 .680
[우] .327 .403 .523 0.926 [좌] .199 .318 .286 .605
[우] .317 .457 .554 1.011 [좌] .215 .347 .265 .612

추신수가 처음부터 좌완에게 약했던 것은 아니다. 추신수는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2008년과 풀타임 첫 시즌인 2009년, 좌완을 상대로 .800이 넘는 OPS를 기록함으로써 좌타자 평균보다 .100 이상 높았다. 2009년 추신수보다 좌완 상대 OPS가 더 높았던 규정타석 좌타자는 11명뿐이었다(이바네스 어틀리 필더 보토 마우어 닉존슨 스팬 카노 '루크 스캇' 모어노 이치로).

추신수 좌완 상대 성적 변화
2008 : .286 .345 .455 .800 (ML .699)
2009 : .275 .369 .456 .825 (ML .703)
2010 : .264 .338 .332 .670 (ML .683)
2011 : .269 .336 .352 .688 (ML .656)
2012 : .199 .318 .286 .605 (ML .648)
2013 : .215 .347 .265 .612 (ML .645)

추신수는 2010년부터 좌완 상대 성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2011년 6월25일에 있었던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추신수는 AT&T파크 원정 경기에서 좌완 조너선 산체스(샌프란시스코)가 던진 몸쪽 슬라이더에 맞아 왼 엄지손가락 뼈가 산산조각나는 대형 사고를 당했다. [가슴 아픈 영상] 추신수는 41경기를 쉬고 8월13일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좌투수들의 집중적인 몸쪽공이었다. 2012년 개막전에서의 리키 로메로(토론토)를 시작으로, '몸쪽 위협구'는 추신수를 상대하는 좌투수들의 필수품이 됐다.

우완 상대 '손가락 부상' 전후 성적
부상 전 : .306 .396 .525 0.921
부상 후 : .320 .425 .538 0.963

좌완 상대 '손가락 부상' 전후 성적
부상 전 : .272 .355 .391 0.746
부상 후 : .226 .332 .315 0.647

FA 시장에 나온 추신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은 ▲내년 올스타전이 되기 전에 만 32세가 되는 적지 않은 나이(얼마전 연구를 통해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평균적인 '정점'은 만 30세도 28세도 아닌 26세로 확인됐다. 그리고 엘리트급 타자들조차 33세부터는 대부분 큰 추락을 피하지 못한다) ▲많은 몸맞는공으로 인한 부상 위험성 ▲최근 2년 간 약화된 수비력과 함께, 무엇보다도 ▲좌완에 약해도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신수가 좌완을 상대로 마지막 두 달 간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의 대반전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클레이튼 커쇼와 류현진을 상대한 7월 27-28일 경기에서, 추신수는 7타수 무안타 1볼넷에 그쳤다. 하지만 8월부터의 추신수는 '대반격'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 만큼 좌완을 상대로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됐다. 좌우 투수를 상대로 한 4-7월과 8-9월(포스트시즌 포함)의 성적 변화는 아래와 같다.

2013년 우완 상대 성적
8월 전 : .339 .459 .595 1.054
8월 후 : .277 .438 .477 0.915

2013년 좌완 상대 성적
8월 전 : .177 .306 .200 0.506
8월 후 : .321 .419 .491 0.910

8월 이후의 추신수는 오히려 우완보다 좌완에 더 강한 좌타자였던 것. 비록 두 달 간의 성적이긴 하지만,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좌완을 상대로 OPS .900을 기록한 좌타자는 아무도 없었다(1위 알렉스 고든 .877). 출루율 4할을 기록한 좌타자도 없었다(1위 아오키 노리치카 .381).

9월24일 뉴욕 메츠와의 홈경기.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1,3루에서 들어선 추신수는, 좌완 숀 헨을 상대로 펜스 상단을 맞고 떨어진 끝내기 안타를 날림으로써 [영상]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조금만 더 높았다면 끝내기 스리런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마지막 경기가 된 10월2일 피츠버그와의 디비전시리즈 진출전에서는 좌완 토니 왓슨을 상대로 포스트시즌 1호 홈런을 때려냄으로써, 2012년 7월1일 볼티모어전(대나 이브랜드 상대) 이후 무려 1년 3개월 만에, 좌완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다. [영상] 평균 94마일의 강속구를 뿌리는 왓슨은, 정규시즌에서 만난 107명의 좌타자를 상대로 한 개의 홈런도 내주지 않은 투수였다.

메이저리그 좌완들이 사이 좋게 공유한 '추신수 공략법'은, 몸쪽 빠른공으로 '산체스 악몽'을 상기시켜준 후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슬라이더를 던지는 것이었다. 7월까지만 해도 추신수는 좌완이 던진 슬라이더에 거의 대처하지 못했다. 이에 좌완의 슬라이더를 마지막으로 본 타석에서 30타수1단타(.033) 12삼진에 그쳤다. 하지만 8월 이후에는 24타수5안타(.208) 6삼진을 기록함으로써 상당히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왓슨을 상대로 뽑아낸 슬라이더 홈런을 포함, 7월까지 없었던 장타도 두 개(2루타 홈런)를 때려냈다. 이에 추신수는 7월까지는 좌완의 슬라이더/커브/커터를 상대로 50타수4안타(.080) 2루타 1개에 그쳤지만, 8월 이후에는 34타수10안타(.294)에 2루타 3개 홈런 1개를 기록하는 대선전을 했다.

추신수의 좌완 상대 코스별 타율(4-7월)
<포수 쪽에서 바라본 모습>

추신수의 좌완 상대 코스별 타율(8-9월)
<포수 쪽에서 바라본 모습>

7월까지 추신수는 높은 코스로 들어온 공에 17타수 무안타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냈다(집중적인 몸쪽 승부를 하다가 느닷없이 바깥쪽 높은 코스에 빠른공을 던지는 것도 추신수에게 꽤나 잘 통했다). 그러나 8월 이후에는 8타수2안타로 상당히 선전했다. 또한 바깥쪽 낮은 코스 두 개(대부분 슬라이더였을 것이다) 역시 14타수 무안타였는데, 8월 이후에는 11타수2안타를 기록했다. 이 두 가지만 봐도 31타수 무안타가 19타수4안타로 변한 것이다. 또한 8월 이후의 추신수는 몸쪽으로 들어온 볼에 대해 커트를 해내거나 반응하지 않았으며, 몸쪽 스트라이크에 대한 성적도 34타수4안타에서 6타수3안타로 바뀌었다.

2013년의 대성공을 불러온 추신수의 중요한 비결 중 하나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타격폼을 콤팩트하게 가져간 것이었다(추신수는 시애틀 마이너리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다고 했는데, 팀의 3번 타자이자 2000만 달러짜리 선수인 조이 보토가 이미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덕분에 부담없이 할 수 있었다. 반면 그런 보토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라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했다). 추신수는 조이 보토를 따라 주자나 볼카운트 상황에 맞춰 방망이를 짧게 잡기도 했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는 좌완을 맞아 정확한 타격과 출루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결과 시즌 막판에는 좌완에 대한 타격 감을 회복하고 장타까지 터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긴 시간 추신수를 떠나 있었던, 좌완에 대한 자신감이 돌아오는 계기로 이어졌다(산체스 사건 이후 무려 2년2개월이 걸렸다).

텍사스의 홈구장 레인저스볼파크는 타자들의 구장이자 좌타자에게 좀더 유리한 구장이다. 좌타자들은 좌완이 잡는다. 지난 시즌의 마지막 두 달 간 보여준 모습을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레인저스볼파크와 텍사스 유니폼은 추신수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김형준]